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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협찬: 내 텅장)/책/영화

책 '프레임' 정리, 프레임을 활용한 설득 사례

프레임, 설득에 힘을 싣다


교양강의에서 칸트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칸트는 개체마다 고유의 인식의 틀을 가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같은 세상이라도 사람은 사람만의 틀로, 고양이는 고양이의 틀로, 개미는 개미의 틀로 세상을 각기 다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집에 사람이 없는 8시간 이상을 심심하게 보낼 애완견을 보면서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틸까’라는 생각을 자주했었다. 그런데 칸트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개들만의 시간의 흐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 마음이 편해진 적이 있다.


'프레임'이란


‘프레임’은 모든 인간이 가지는 인식의 틀보다 더욱 구체적인 개개인의 인식의 틀을 의미한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각의 방향을 만드는 프레임은 지혜로운 삶을 사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프레임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생활의 여러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다 바람직한 프레임을 갖출 필요가 있다.


프레임은 비단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시각, 공동체에게도 존재한다. 그래서 종종 설득에서는 프레임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설득을 하고자 할 때 상대방의 인식의 프레임을 재설정하면 설득주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더욱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 프레임으로 인해 설득에 반하는 생각의 흐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프레임'을 통한 설득 사례


프레임이 설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는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번도 내가 학보사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지만 나는 학보사에 들어갔다. ‘뭔가에 몰두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길 무렵, 학보사 기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신문이 죽고 있다는 말을 이미 수도 없이 들었던 터라 신문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성언론조차도 구독률이 하락하고 있고, 다른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설 자리를 조금씩 잃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학보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은 더 작아보였다. 주변 사람들을 살펴봐도 신문은 비가 오는 날 임시우산으로 사용되는, 야외에서 돗자리가 없을 때나 찾게되는 종이에 불과했다. 때문에 나는 학교신문을 만드는 일 자체는 보람차겠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곳곳에서 ‘신문은 여전히 힘이 세다’라는 짧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보게 되었다. ‘여전히 힘이 세다’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신문은 예전에도 힘을 가졌으며 지금도 예전과 다름없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문의 영향력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나는 그 문구를 본 뒤 신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신문의 영향력에 대한 프레임이 변하게 된 것이다. 신문에 회의적인 프레임을 갖고 있었을 때에는 학교 곳곳에 있는 신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학교신문에 실린 기사의 영향으로 학교의 제도가 개정된 경우가 있는지도 몰랐다. 신문을 읽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신문에 대한 프레임이 변하고 난 뒤에는 신문이 ‘여전히 힘이 센’ 근거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 기사를 읽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대자보가 중앙도서관 기둥에 붙었던 일, 신문에서 지적한 문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해갔던 일 등이 떠올랐다. 똑같은 신문에 대한 생각이었는데도 프레임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생각하는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이 신기했다. 만약 학보사에서 그 플래카드를 붙이지 않았다면 나는 학보사에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신문에 대한 회의적인 프레임을 가지고 우리학교 학보사를 바라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보사에서 붙인 플래카드는 학생들이 학보사에 들어오도록 하는 설득 전략의 하나였고, 그 전략이 바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만약 학보사가 플래카드를 통해 ‘취업에 도움이 될 스펙’이라든지,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나는 학보사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저런 사항들은 신문에 대한 회의적인 프레임의 바꾸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신문은 여전히 힘이 세다’는 말로 신문에 대한 프레임을 긍정적인 프레임으로 변화시켰다. 프레임이 바뀌니 신문의 영향력이 보이고, 나아가 학보사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프레임'을 활용한 설득의 필요성


프레임이 바뀌면 설득주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반하는 방향으로의 생각이 줄어들게 된다. 반면에 생각하는 방식부터 변화시키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해도 설득대상이 설득하고자 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생각을 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설득대상의 생각의 기저에는 설득하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생각이 깔려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를 탈 때 흐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흐름을 거스르고 가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설득과정에서 프레임을 이용하지 않으면 물의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는 배가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의 과정에서는 배가 물의 흐름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프레임을 바꾸는 과정이 선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프레임을 바꾸는 일이 선행돼야 하는 경우가 또 있다. 학보사에서 교수님을 취재할 때에 유용하다고 전해들은 팁이 바로 그 예다. 학보사에서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 위해 교수님들께 인터뷰를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 교수님들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시도록 설득하기 위해 프레임을 이용할 수 있다. 교수님들께 인터뷰를 의뢰하기 위해 메일을 보낼 때 ‘기자’라는 이름보다는 ‘제자’라는 이름으로 부탁을 드리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한다. 학보사 기자라고는 하지만 기자라는 이름은 관계를 더욱 딱딱하게 만든다. 교수님이 기자와 취재원이라는 프레임으로 관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제자라는 점을 강조해서 교수님께 요청을 하면 교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라는 프레임으로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기자와 취재원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부드러운 인상을 받게 된다. 이렇게 기자로서 부탁을 드리는 상황에서 사무적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것보다 학생 중의 한 명으로 교수님께 다가가면 인터뷰를 하는 데에 보다 높은 확률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관계의 성격이 가져오는 부담감을 프레임을 바꿈으로써 줄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프레임을 바꾸는 일은 한 개인을 지혜롭게 만드는 것은 물론 설득과정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득대상의 생각의 바탕을 바꾸는 프레임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설득과정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