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을 쏜 자는 조물주가 아니다
영화 '오발탄' 줄거리
가난한 계리사 송철호는 언제나 박봉에 시달린다. 양쪽에 난 사랑이 때문에 치통을 앓으면서도 충치 하나 뽑을 여유도 없이 살아간다. 그의 집에는 늘 '가자'를 외치는 정신이상의 어머니와 영양실조인 만삭의 안내, 전역 후 직장도 없이 사고만 쳐대는 동생 영호가 있다. 여동생 명숙과 막내동생 민호, 그리고 어린 딸도 철호의 식구다. 월급을 받아도 치과로 향하지 못하는, 딸에게 사줄 신발을 만지작거리다가 뒤돌아서게 만드는 가난한 삶을 버텨내는 철호다. 여동생은 상이군인으로 제대한 경식을 사랑하지만, 경식은 자신의 다리가 아픈 탓에 그녀를 멀리한다. 그러자 명숙은 결국 양공주가 되어 밤거리에 나선다.
철호의 동생 영호는 영화배우이자 다방레지인 미리에게 영화 출연 제의를 받지만, 자신의 옆구리에 있는 관통상 때문인 것을 알고는 자리를 떠버린다. 그러던 영호는 군대 시절 야전병원에서 봤던 설희와 재회한다. 설희의 집까지 간 영호는 설희의 옆집에 사는 시 쓰는 청년에게 적의에 찬 시선을 받는다. 며칠 뒤 영호는 설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설희네를 다시 찾은 영호, 옆집 청년이 설희를 살해했음을 알게 된다. 설희 방에서 실탄이 든 권총을 가지고 나온 영호는 은행털이를 결심하고, 박 하사에게 운전을 부탁한다. 그러나 총성에 놀란 박하자가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돈 가방을 가지고 도주하던 영호는 체포되고 만다.
경찰서에서 일을 수습하고 돌아온 철호는 출산을 하던 아내가 위독한 상태라는 소식을 접한다. 병원에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둔 뒤다. 휘청거리며 거리를 걷던 철호는 치과에 들어가 사랑니를 빼버린다. 다른 쪽 사랑니도 마저 빼달라고 말하지만 의사는 과다출혈 위험이 있다며 만류한다. 그 말에 철호는 다른 치과를 찾아 사랑니를 마저 빼버린다.
치과에서 나와 택시에 탄 철호는 노모가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러다 다시 경찰서로 가자며 방향을 바꾼다. 갈곳을 모르고 우왕자왕하는 철호의 입에서는 하염없이 피가 흐르는데, 택시기사는 하필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다며 투덜댄다.
오발탄 리뷰
영화와 관련된 우스운 경험이 있다. 영화 ‘인셉션’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친오빠는 언제나 ‘인셉션’이라는 영화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빠는 나에게 그 영화를 꼭 보라고 여러 번 말했다. 친구들도 ‘인셉션’에 대해 호평을 했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여가시간을 투자해 ‘인셉션’을 보기 시작했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약 2시간 반, 그러나 내가 이 영화를 보는 데에 걸린 시간은 7시간이었다. 보는 도중에 잠이 들었다 깨기를 몇 번씩이나 반복한 탓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화보기는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곳이 극장이든, 노트북이든, 텔레비전이든 영화를 보는 것은 어렵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나의 시선과 정신, 그리고 육체를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가 재미있든 그렇지 않든 이 생각은 항상 내 머릿속을 이따금씩 채운다. 때문에 영화감상문 과제는 이해되지 않는 논문을 그럴싸하게 요약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을 논리적인 것처럼 써야 하는 여타 과제들에 비해 결코 쉽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었다. 감상문을 쓰는 데에 반드시 거쳐야 할 영화를 보는 일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이 이번에는 잠들지 않았지만 다른 복병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쉽사리 영화를 볼 수 없었다.
내가 본 영화는 '오발탄'이다. 1961년 개봉한 이 영화는 흑백유성영화이다. 색은 표현되지 않지만 영화에 나오는 것들은 모두 분간할 수 있고, 배우들의 목소리도 나오는 영화다. 그러나 처음부터 영화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배우들의 말투 때문이었다. 요즘 접하는 영상매체에서 보이는 말투와는 확연히 다른 배우들의 말투는 배우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다. 1960년대 당시의 당연함이 2012년에 와서 장벽이 된 것이다. 배우들의 말투는 간간이 보이는 옛날 우리나라의 모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마주하는 아찔한 반가움을 방해하는 큰 장애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발탄'의 진가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자세하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확실히 전달되지 않더라도 그 배우들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현실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영상 하단에 나오는 영어자막으로 대사를 알아내는 것이 더 쉬웠던 것은 다소 황당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영화 초반부를 보면서 ‘이 가족은 정말 콩가루가족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형 철호뿐, 어머니는 정신이 이상하고, 동생 영호는 ‘삐딱선’을 타고, 여동생은 양공주라니, 극심한 치통이 계속되는데도 이를 뽑지 못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철호 혼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가족이었다. 도대체 왜 이 가족은 이 모양 이 꼴로 사는가, 다른 방도는 없었는가, 못마땅한 눈으로 철호의 가족을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됐다.
자신이 사랑한 여인이 죽자 영호는 여인의 집에 있던 총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은행을 털어서 큰돈을 마련할 심산이었다. 영호의 낌새를 알아챈 철호는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려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면서 영호를 타이른다. 그러자 영호는 오히려 반문한다. ‘왜 우리만이 좁은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 해?’라고 말이다. 이 질문에 누가 명쾌히 답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던져주는 답이 그들의 막힌 숨구멍을 터 줄 수 있을 것인가.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죄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전쟁이 가져온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가난했고, 당연하게도 힘들었다.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원하는 물건 하나 손에 쥘 수 없었다. 훔친 돈을 가지고 도주하던 영호가 본, 다리 밑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목을 매 자살한 엄마의 모습도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자살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은 없다. 양공주가 되는 것이, 은행을 성공적으로 터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인생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가져온 현실은 사람들을 꿈에서 멀어지게 했다. 조금이라도 잘 살 수 있으려면 양공주가 되어야 하고, 은행을 성공적으로 털어야 했다. 삶의 무게가 가져오는 고통이 이에 통증을 가져오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고향을 잃은 어머니가 정신을 잃은 채로 고향을 그리워할 때에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람들은 좁은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그저 턱턱 막히는 숨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들에게 돌을 던진다. 그들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도둑놈이 되고, 노망난 노인네가 될 뿐이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전쟁이 벌어지는 시기에 이 땅에 살았다는 사실밖에 없다. 아니, 이것도 죄가 될 수 없다. 그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철호의 가족이 고통을 겪게 된 것은 전쟁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철호의 가족이 전쟁을 일으켰나. 그들이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아 마땅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한 나라의 국민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피해자였을 뿐이다.
철호의 가족을 수렁에 빠뜨린 전쟁은 순수한 뜻으로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진 자들의 포기할 줄 모르는 욕심의 충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더 전파하겠다는, 기득권을 앗아가려는 세력을 제거하겠다는 뜻만을 위한 것이었다. 국민들의 안정과 행복 따위는 그들에게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됐고, 수많은 총성이 오갔다. 무수히 많은 철호네 가족들이 양산됐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렇게 이 땅의 철호네 가족들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책임에 짓눌리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철호의 가족은 비극 중의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아내는 아이를 낳으러 갔다가 생을 마감하고, 동생 영호는 은행을 털었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연달아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철호는 치과에 가서 자신을 아프게 했던 사랑니를 뽑아버린다. 이를 통해 그의 삶에 뿌리를 내린 고통을 없애겠다는 소망을 이루고자 했겠지만, 병원에서조차 그는 사랑니를 마음대로 뽑을 수 없다. 이내 그는 가진 돈의 대부분을 치과에 놓고 나선다. 택시를 탄 그는 목적지를 확정하지 못하고 서울 시내를 헤맨다. 이 모습을 본 택시기사는 철호를 '오발탄'이라 칭하고, 철호 또한 자신을 오발탄이라고 생각한다. ‘갈 곳을 알 수 없는 조물주의 오발탄’ 말이다.
그러나 오발탄을 쏜 자는 조물주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자신들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무분별하게 총성을 울려댄 사람들이 오발탄을 쏜 장본인이다. 어째서 잘못 발사’된’ 오발탄을 탓하는 것인가. 오발탄은 그저 밀려 나간 총알일 뿐이다. 진정 책임이 있는 사람은 총의 방아쇠를 당긴, 그리고 조물주가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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