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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협찬: 내 텅장)/책/영화

다니엘 부어스틴 '이미지와 환상' 리뷰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을 통해 사람들이 진짜보다는 진짜 같은 가짜에 매혹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그 진실이 조금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이길 원한다. 이러한 욕구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는 Pseudo-event(의사사건)이 발생한다. 진짜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계획된 가짜 사건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사사건들을 피동적으로 수용한다.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에서 진짜보다는 그럴듯한 가짜에 매혹되고 있는 현대사회의 경향을 여섯 테마로 나누어 제시한다. 첫 번째는 뉴스 모으기가 뉴스 만들기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이다. 과거의 신문은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모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수행했으나, 현재는 사건을 고의로 발생시키거나 통제하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사건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는 사람들이 사건은 신이 만드는 것이므로 기자는 그저 전달하는 역할만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벗어난 데에서 기인한 변화이다. 기자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헤드라인을 뽑아내기 위해 기삿거리를 '만들어낸다'. 독자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뉴스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며, 미디어에 의해 창조된 뉴스를 통해 머릿 속에 형성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두 번째는 인간적으로 영웅적 면모가 돋보이는 사람이 아닌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 인기를 얻고 존경받게 된 현실이다. 오늘날의 유명인사의 대부분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전달되는 의사사건에 의해 만들어진다. 매스미디어에 노출되기만 하면 유명인이 될 수 있는데, 이 과정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사람들은 미디어에 의해 탄생한 유명인사에 열광한다. 때로는 진짜를 흉내내 유명해진 가짜에 더욱 열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기도 한다. 세 번째는 능동적으로 활동하면서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려는 여행자보다는 누군가 일러주는 것만 따라서 그저 겉부분만 보고 오는 관광객과 같은 모습이 판을 치는 현실이다. 과거의 여행자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극을 받고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자신의 자산, 생명 등을 담보로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떠났고, 그런 경험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여행자들은 사라지고 관광객들만 나타나고 있다. 관광객들은 돈을 주고 안전하고 편안한 관광을 구매한다. 그러면서 관광 상품이 자신들에게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경험들, 즉 의사사건을 마련해주길 원한다. 모험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집을 다른 장소에 옮겨 놓은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관광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원작의 순수한 의미가 복제품에 의해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원작의 가치를 중시하며 원작을 신성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원작과 똑같은 모조품을 수없이 복제해내는 것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원작보다 복제품에 친근해졌으며, 복제품이 원작을 대체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예술이 대중화되면서 원작은 대중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거나, 어느 누가 보아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형태로 재단되기 시작했다. 원작의 알맹이는 사람들에 의해 마구 조작되었고 결국 껍데기만 전승되게 되었다. 한편, 사람들이 원작을 파악하기 쉽도록 도와주는 '다이제스트'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원작보다도 다이제스트를 더 우선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원작은 설 자리를 잃고 자신을 바탕으로 탄생한 그림자들에 의해 뒤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다섯 번째는 이상이 이미지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이다. 사람들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상조차도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서의 이상이 아닌,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가치로서의 이상이 되고 있다. 그 결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형성된 이미지가 이상의 자리를 대체하게 됐다. 사람들은 이상을 얼마나 잘 추구하는가보다 얼마나 좋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이미지에 잘 부합하고 있는지에 중점을 두게 됐다. 광고산업의 발달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마지막은 미국의 꿈이 미국의 환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꿈은 꿈을 꾸는 사람이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환상은 환상에 빠진 사람이 그것이 환상인지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미국인들은 그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현재는 환상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환상으로 가득한 세상을 진짜로 여기며 살고 있다. 


여론은 공중의 의견이다. 그러므로 공중은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의 중심에 있는 존재이다. 일반적으로 공중은 사회의 이슈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며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정의된다. 만약 사회의 이슈가 무엇이며, 그 이슈는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면 그는 공중이라 할 수 없다. 


과거에는 일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제한돼 있었다. 역사가 발전해오면서 사람들에게 세상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미디어들이 등장했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 결과 사람들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다면 사회의 이슈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로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선배들이 자신만의 뚜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 부어스틴의 논지에 의하면, 아무리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수용한다고 할지라도 이런 사람들은 절대 공중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디어가 전하는 것은 대부분 의사사건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의사사건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진정한 사회의 이슈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라고 판단하게 만들고자 한 이슈를 사회적 이슈라고 착각하게 된다. 진실은 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게 되거나 왜곡된 채로 전해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지며, 사람들은 진정한 공중이 되지 못한다. 물론 여론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은 어떠한가? 미디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얻는다.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책을 읽음으로써, 색다른 장소를 가봄으로써,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자신만의 생각을 길러나가며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 일상에서 직접적인 정보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비극적이게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대부분의 것들 역시 진짜가 아닌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진짜를 찾는 것은 미디어에서 왜곡되지 않은 진실을 읽어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가짜들에 이미 익숙해져 있으며, 가짜들로 이뤄진 세상을 마치 진짜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세상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를 보고자 하는 욕구도 없으며, 심지어 진짜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망각해버린다.


이를 종합해보면 사람들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닌 진짜 같은 가짜라는 결론이 나온다. 직접 피부에 닿는 것들에서부터 시작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이야기까지, 사람들은 가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들이 그들이 사는 곳이 가짜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그저 현실에 만족할 뿐이고 쏟아지는 가짜를 열심히 흡수하고 이해하면 공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사람들은 가짜 세상에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다니엘 부어스틴의 <이미지와 환상>이라는 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여태까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가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이 진짜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가짜라는 점을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사람들은 현실을 의심하며, 가짜를 경계하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 자신이 받아들이는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정보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다 정확한 진짜 정보를 얻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미디어와 주변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공중이 탄생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보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미디어와 각종 의사사건 등 가짜를 양산해내는 사람들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자제하게 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전엔 없었던 의심의 눈초리가 생겨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짜 생산자들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 결과로 사람들을 가짜의 늪에 빠지게 만드는 의사사건이 조금씩 줄어들고, 가짜와 진짜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향상된다면, 사회의 이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가지며 합리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공중이 나타나게 될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 이때의 공중은 가짜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누군가의 의견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 진정 자신의 의견을 가진 공중인 것이다. 이러한 공중이 나타날 때에야 여론도 진정한 여론으로서의 지위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이미지와 환상>은 시작점이 되는 움직임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의사사건은 넘쳐나고,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신이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이 책이 의미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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