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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협찬: 내 텅장)/학술

스티브 잡스 스피치 리뷰 -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 애플 키노트 감상문 (2012년)

민주통합당 경선이 끝났다. 경선이 진행되는 동안 TV에서 후보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후보들끼리 토론을 하거나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으로 연설했다. 이따금씩 스피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한 적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정책보다 이미지, 자신의 강점 혹은 상대방의 약점만을 꼬집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경선 후보들이 한 연설과 스티브 잡스의 스피치의 성격은 다른 것이겠지만 청중들을 설득하기 위함이라는 점은 같다. 답답함을 느끼게 했던 후보들의 스피치와는 달리 잡스의 스피치에서는 내가 생각한 좋은 스피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생각하지 못한 모습까지 갖고 있었다. 


잡스의 스피치 중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는 진심이 담긴 내용의 구성이 돋보였다. 잡스는 목소리와 내용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내용을 어떻게 전달하느냐와 어떤 내용를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진부하고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진심이 담긴 내용이었다. 궁극적으로 그가 말하고자 했던 ‘stay hungry, stay foolish’는 그가 창조한 말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인생이 녹아있는 내용을 구성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했다. 잡스가 만약 “짧고 굵게 말하겠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했다면 이 스피치는 세계적인 스피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걸어온 인생길이 저 메시지를 직접 보여줬기 때문에 청중들이 감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잡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깊이 감동받았다. 잡스는 자신의 유명세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도, 단순히 시간만을 채우기 위해서도 아닌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기 위해 스피치를 했다. 그 스피치 내용 중 죽음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 철학자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정작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음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허비한다. 잡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도와줌으로써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길 당부한다. 이 당부가 내 마음에도 와 닿았고 죽음의 순간에 직면했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간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내용이었다. 저 격언이 이야기하는 맥락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지만 단순히 보고서를 쓰기 위해 봤다가 설득에 대한 생각은 물론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고민까지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아이폰 출시 스피치는 여태까지 본 스피치 중에서 가장 친절했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전달했다. 잡스가 스피치에서 사용한 전략으로는 유머, 반복, 비교, 시범 등이 있었다. 잡스는 초반에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장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청중들의 마음에 틈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의 긴장감을 약화시켰을 것이다. 


유머로 가볍게 스피치를 시작한 잡스는 아이폰에는 'iPod', 'Phone', "Internet‘ 기능이 모두 들어가 있다는 점을 반복했다. 처음과 마지막에 특히 강조함으로써 청중들이 아이폰의 대표적인 강점을 파악한 뒤 그의 스피치를 들을 수 있었으며,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인식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반복할 때마다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 스피치 초반에 잡스가 이 내용을 일종의 유행어처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강조만이 아닌 웃음이라는 반복의 또 다른 기능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다. 이 내용 외에도 잡스는 대표적인 기능을 설명한 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간략하게 요약한 내용을 반복한다. 새로운 제품을 만나는 청중들이 내용을 잊지 않고 혼란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스피치에서 가장 돋보였던 점은 시범을 보인 점이었다. 잡스는 아이폰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 후 그 특징을 청중들 앞에서 직접 선보였다. 직접 통화를 하고, 메일을 보내고, 음악을 재생하는 등 대표적인 기능을 모두 보여줬다. 말뿐만이 아니라 시청각적인 정보까지 제공한 것이다. 어떤 제품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사람들은 리뷰를 찾아본다. 직접 사용하면 어떤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리뷰를 넘어 직접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는 장소까지 생겨나고 있다. 잡스는 이런 사람들의 욕구를 2007년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궁금증과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들 앞에서 숨김없이 드러낸 것이다. 이런 드러냄은 친한 설명이기도 했지만 아이폰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그는 일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방법으로는 비교도 있었다. 다른 스마트폰의 단점을 드러내면서 이를 극복한 아이폰의 장점을 강조한 것이다. 무조건 아이폰은 좋다면서 보여준 것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스마트폰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에 더 좋다고 말한 점은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데에 더 효과적이었다. 평소에 아이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나조차도 아이폰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스피치를 보면서 잡스의 언어적인 설득 전략 외에도 그는 청중들이 스피치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다른 방법도 구사했다. 그 중 한 가지가 의상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스피치를 할 때마다 같은 의상을 고수한다. 때문에 그 의상은 잡스를 상징하게 됐다. 그가 튀지 않는 옷을 입었던 데에는 자신보다 제품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딱딱한 분위기를 만들기 보다는 편안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장소에서 사람들이 앞에 보이는 화면과 그의 스피치 내용에만 집중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가 발표에 활용한 PPT 화면은 간결함의 극치이다. 이미지 위주로 이뤄져 있고, 글자는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씌어있지 않다. 때문에 사람들은 아이폰의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려는 내용을 완벽하게 외우지 않고 PPT 화면을 보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PPT에는 수많은 문자들이 씌어있다. 발표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문자를 읽는 것에 집중한다. 이와 달리 잡스는 내용을 완벽히 암기하고 엄청난 연습을 통해 이미지만 있는 PPT화면을 보고도 내용을 이어간다. 덕분에 청중들은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화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일을 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이는 잡스가 말하는 바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이렇듯 잡스의 스피치는 간단한 듯 보여도 많은 전략이 녹아있었다. 단순히 그 시간을 무사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하는 잡스의 의지가 돋보이는 알찬 스피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