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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협찬: 내 텅장)/학술

모바일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하여 - 활발한 소통, 그러나 더 높아진 벽

이 리뷰는 제임스 하킨의 <니치>와 캐스 선스타인의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를 읽고, 모바일 시대의 공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논한 글입니다.


'니치', 비주류의 주류화

제임스 하킨은 <니치>라는 책을 통해 ‘비주류’라 일컬어졌던 것들이 주류가 된 현실을 분석하고 있다. 과거에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끌었다. 대기업들은 획일성과 무난함으로 대표되는, 개성이 전혀 없는 제품을 마구 쏟아냈다. 소비자들은 그러한 제품들에 열광했다. 의류 브랜드 'GAP'은 이러한 특징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기업으로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제품들은 모두에게 외면당하게 되었다. 흐리멍텅한 정체성과 타겟팅의 결과였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개성을 확실하게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게 됐다. 자신이 찾는 확고한 스타일을 충분히 반영한 브랜드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패션시장에서뿐만이 아닌 생활 전반에서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모든 분야에서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틈새에 위치한 시장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자신들만의 개성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속감이 향하는 곳을 향해 열광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트렌드를 읽어내고, 예전에는 등한시했던 틈새시장에 파고들고 있다. 모두의 사랑을 받으려 했기 때문에 누구의 사랑도 받지 못했던 기업의 쇠퇴를 타산지석 삼아, 사람들이 향한 비좁은 틈새로 거대한 몸집을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기호를 반영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브랜드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비주류라 일컬어지던 것들이 주류가 되었고, 주류라 불리던 것들은 모두에게 외면 받아 쓸쓸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분류와 그 분류에 대한 지나친 인식으로 인해 ‘비좁은 닭장’에 갇히게 될 부작용도 있지만, 소비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개성을 숭배하며, 자신이 위치한 틈새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집단극화현상

한편, 캐스 선스타인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집단극화현상을 면밀히 분석한다. 집단극화현상이란 한 주제에 대해 같은 방향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토의과정을 거치면, 그 의견의 강도가 더욱 극단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집단극화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더 나아보이게 하기 위해 더 강력한 주장을 펼치거나(사회적 비교이론), 집단의 구성원들과 일치하는 의견을 말함으로써 호감을 사려는 전략에서 비롯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견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어 더 강력한 의견을 펼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바탕으로 판단하게 되는 폭포효과, 강력한 유대감, 선택적 인지 등 다양한 물리적, 심리적 요인들이 집단극화 현상의 원인이 된다. 이렇게 나타나는 집단극화 현상은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존재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극단적인 방향으로 의견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주장이 옳은 것이라 믿게 되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의 무자비한 테러활동, 나치즘 등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집단극화 현상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움직임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집단극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모바일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 활발한 소통, 그러나 더 높아진 벽

앞에서 언급한 <니치>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에서 논의되는 행동양식은 오늘날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을 설명하는 데에 적절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기술이 주는 편리함을 토대로 생활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모바일의 발달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의지만 있다면 제약 없이 자신이 원하는 커뮤니케이션, 쇼핑 등의 행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매스미디어로 대표되는 일방향의 커뮤니케이션 창구만 존재했을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정보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매스미디어가 전해주는 정보만을 수용해야 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에도 하는 수 없이 노출돼야 했다. 그러나 쌍방향 미디어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선택권을 가져다주었다. 원하지 않는 정보는 피하고 원하는 정보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만 접근하고, 자신과 일치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공통의 관심사를 토대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전해지지 않았던 정보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커뮤니티에 소속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방대한 양의 정보를 나누게 되었다. 과거 매스미디어에 의해 선택되지 못했던 세세한 요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며 엄청난 소속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소속감을 토대로 사람들은 그들의 관심사에 지속적인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들이 속한 집단 내에서는 비주류였던 것도 주류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예전에는 비주류였던 것들도 주류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결집한 사람들의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저마다의 주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양상는 개인적인 선호뿐만 아니라 의견의 방향이 존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방향의 매체만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원하지 않는 정보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쌍방향 매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만 자신을 노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은 정보에만 접근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이 개개인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결집한 것과 같이 자신의 주장과 부합하는 사람들끼리만 결집하게 되었다.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고부터는 보다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졌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관심사 혹은 의견과 일치하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만 활발해지면서 이들에게서 집단극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대의 의견은 찾아볼 수 없는 커뮤니티 내에서는 의견이 한 방향으로만 흘렀으며, 이러한 흐름을 견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튀게, 남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남들의 입장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주장을 펼쳤고, 그들만의 논리를 세워나갔다. 그 논리는 지나치게 극단화된 것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관심사만이 최고라는, 그들이 주장하는 의견만이 최고라는 자부심들이 뭉쳐 빚어낸 결과였다. 그 결과, 공중들은 사방팔방의 극단으로 흩어졌다. 중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의 극단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한 논란거리에 대한 찬반, 한 음악장르에 대한 숭배, 한 연예인에 대한 숭배, 한 브랜드에 대한 열광 등 공중들이 소속된 극단은 무수히 많아지게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꼽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논란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통일된 입장을 도출해내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끼리 소통하고 있다. 이러한 편향적이고 폐쇄적인 소통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다른 의견과 관심사를 포용하려는 변화를 보이기 전까지는 계속될 확률이 크다. 둥그런 구에 뾰족한 뿔이 여기저기 달려 있는 모양의 철퇴는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양이라 할 수 있겠다. 무수히 많은 수로 세분화된 사람들의 관심사와 주장, 그리고 안쪽이 아닌 바깥쪽으로 뻗어 있는 뿔 말이다. 저마다의 세계에서 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모양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지구는 둥글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둥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