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반의 민주적 대화가 가능한 공론장은 갖춰질 수 있을까
공동체의 이해를 공유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인 공론장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그리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그 테크놀로지가 공론장의 존재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인터넷도 공론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과 낙관적인 입장이 존재했다. 회의적인 관점에서는 이 현상을 정보의 과다, 커뮤니케이션 과다, 소수의 여론 독점, 정보격차 등의 이유를 들며 인터넷은 공론장이 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회의론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인터넷은 너무 많은 정보가 유통되기 때문에 유용한 정보를 얻기 힘들며,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엔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부작용이 있었다. 또한,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논의를 끌어가기 위해 여론을 독점하거나 돈, 권력, 전문성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독점해 일반인의 이용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도 경계했다. 나아가 정보격차로 인해 인터넷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논의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결국 회의론자들은 인터넷은 너무나 ‘혼란스럽고’, ‘소수의 의견에만 관심이 집중’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공론장이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벤클러를 대표로 하는 낙관론자들은 인터넷이 공론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벤클러는 권력, 정보, 인기 등이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빈익빈 부익부의 경향을 보임을 설명하는 제곱근 현상과 관련해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했다. 바로 선택 받은 소수를 결정하는 그룹의 내적인 추동요인이 있다는 점이었다. ‘intrinsic growth rate’라 불리는 이 추동요인에서 벤클러는 공론장의 가능성을 보았다. 소수의 의견도 네트워크 구조 내에서 다수의 의견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벤클러는 이 점에서 착안해 회의론자들의 인터넷은 ‘혼란스럽고’, ‘소수에게만 집중’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반박했다. 제곱근 그래프를 보면 많은 수의 의견들이 아주 작은 집중을 받고 있으며 그 중 일부만이 엄청난 관심을 받는 의견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 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의견들은 큰 존재감이 없이 사라져버린다. 회의론자들은 이 점을 비판했지만 벤클러는 이렇게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의견들이 많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이 ‘혼란스러운’ 공간이 되지 않을 거라고 재반박했다. 또한, 사람들이 몇 단계만 거치면 전 세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내용의 ‘small world’ 개념을 응용해 작은 네트워크 안에서 주목 받은 의견이 더 큰 네트워크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몇 번만 거치면 그 의견이 관심을 받는 의견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인터넷에서 제기되는 의견이 한 번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위계를 타고 전파되면서 관심을 받는 과정을 거치며, 이 과정을 통해 작은 의견들도 집중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소수의 독점’이라는 회의론의 입장을 반박했다. 더불어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그들이 지지하는 의견에 집중함으로써 그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구조는 민주적인 성격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즉, 벤클러는 이렇게 제곱근 법칙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이용해 회의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인터넷도 민주적인 공론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인터넷이 공론장이 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서, 인터넷이 가진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토대로 삼아 한계점을 극복해 나간다면 새로운 형태의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두 가지의 새로운 움직임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지역에 대한 중요성의 대두이다. 그리고 다소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러한 변화를 움직임을 토대로 새로운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개개인들이 모여 충분한 숙의를 거칠 수 있는 공론장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서 공론장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공론장 모델을 고안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주민이 중심이 되는, 온·오프라인 혼합 기반의 공론장이다. 새롭게 제시하고자 하는 공론장의 특징은 ‘주민 중심’, ‘온·오프라인 혼합 기반 사용’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각각의 특징을 담아낸 이유는 무엇이며, 이 특징을 담은 공론장은 어떤 형태를 보일지, 그리고 이런 특징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성과정을 거쳐야 할 지를 살펴볼 것이다.
새로운 공론장의 첫 번째 특징은 ‘온·오프라인 혼합 기반 사용’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공론장이라는 의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둘 중 한 가지를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의 경우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보다 탄탄한 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으며, 심도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우며, 논의한 내용을 확신시키는 데에 많은 금전적, 물리적 비용이 요구된다는 한계가 있다. 또한, 논의하는 주제가 상충하는 두 입장을 만들어내는 논의일 경우, 다수의 의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민감한 사안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체면 등을 의식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반대로 온라인의 경우 실명제와 익명사용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익명으로 논의가 가능하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서 보다 많은 사람이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논의된 내용을 확산시키는 데에 큰 노력이나 비용이 요구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정보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데에 큰 비용이 필요했으나, 온라인 미디어는 ‘linking’과 ‘sharing’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보 전달 방식을 통해 정보의 유통비용을 0에 가까이 수렴하게 만들었다. 직접 정보를 가공하고, 그 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지 않더라도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그들이 유용하다고 믿는 정보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온라인 상의 정보 전달방식은 공론장에서 형성된 논의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데에 필요한 노력을 상당히 절감시켜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은 정보격차 현상이 일어나 이 테크놀로지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참여는 완전히 배제해버릴 수 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론장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이야기, 그리고 질이 낮은 논의들이 범람할 위험도 있다.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가능성과 한계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성은 살리되 한계점은 보안하면서 온·오프라인 혼합 기반을 고려하게 되었다.
한편, 새로운 공론장의 두 번째 특징은 ‘주민 중심’이다. 주민이 중심이 되는 이유는 새로운 공론장에 대한 고민이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가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획일적인 문화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최근, 지역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에서는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자 마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공론장이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생각을 낳았고, 이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공론장의 중심 주체를 주민으로 설정하였다. 주민을 중심으로 공론장이 형성되면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겉핥기 논의가 아닌 지역에 초점을 맞춘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갈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지역에 대한 이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광범위한 이슈도 지역과 직접적으로 관련시켜 논의할 수 있는 지역 중심적인 논의를 일컫는 것이다.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모여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논의해간다면 그곳에서 생겨나는 공론은 한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지역의 이야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벤클러가 응용했던 ‘small world’라는 개념처럼 보다 상위의 커뮤니티로 전해지면서 사회 전체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지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떠도는 이야기들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논의가 사회 전체의 논의로 확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가 사회 전체의 공론을 형성할 때에 불필요한 소음으로 작용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회 전체의 논의에 지역성을 충실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주민중심으로, 온·오프라인 혼합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론장의 운영방식은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논의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오프라인에서의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오프라인에서의 논의 내용을 공유한다. 지역주민만이 오프라인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며, 참여자들은 반드시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 논의가 완료된 내용들은 온라인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공유한다. 앞에서 언급한 운영방식은 지역주민이 중심이 되는 공론장을 형성하면서, 그들이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대부분의 논의를 하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함께 논제를 만들어가고, 기본적으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게 만들기 위함이다. 논의의 시작점을 탄탄하게 갖춰놓아야 온라인에서의 추가적인 논의도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흘러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프라인 논의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온라인에 공유되는 논의 내용을 보고 논의에 참여하면 된다. 시간적, 공간적 제약 혹은 첨예한 대립이 있는 논제에 대한 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라인상의 공론장에 접근하는 모두에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명백하게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순수한 지역주민의 공론을 형성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논의에서 배제하게 된다. 참여대상이 모호해질 경우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소속감 또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지역주민으로 참여대상을 제한하였고, 반드시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들 선에서 논의가 완료된 사안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하게 공유하도록 하였다. 이는 지역주민들이 형성한 논의가 지역의 작은 이야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논의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이 직접 형성한 공론이 사회 전체의 의견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민주성을 갖추고 있다.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에 의해 소극적으로 수합된 의견이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토대로 형성되고 사회로 확장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유 방식은 주민들의 의견이 상위조직에게 전해지고, 수렴되는 데에 있어 가장 민주적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론장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시작 과정부터의 주민 참여’이다. 주민의 참여가 없으면 새로운 공론장은 형성될 수 없으며,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이름만 있는 공론장에 불과하다. 주민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만약, 새로운 공론장을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다고 생각해보자.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공론장 형성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을 위한 공론장이라고 할지라도 관에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일일 것이라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어떤 식으로 관련이 있는지도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관이 공론장을 형성한다면, 단기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감독을 할 것이고, 마음은 없고 몸만 있는 참여자들을 끌어내는 데에 힘을 쓸 것이다. 그리고 결국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공론장의 의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해 이를 다시 폐쇄시킬지도 모른다.
결국 주민의 직접적인 참여가 공론장 형성의 기초 단계에서부터 기반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효과적인 공론장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되지 않기 위해 공론장 형성부터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여기서 관의 역할은 주민들에게 주민중심의 공론장이 필요성을 알리는 것과 최소한의 금전적, 기술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공론장 형성이 시작되려면 동기가 필요하고, 공론장을 지속적으로 운영해나가려면 비용이 필요하다. 관은 이러한 필요성에 비상시 인공호흡기 같은 역할만을 행하면 된다. 전반적인 지원이 아닌 명맥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조달해주는 것이다.
이 외의 일은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나가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 공론장 형성에 참여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론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에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고, 일을 하다 보면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관이 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이웃이 하는 일이라고 하면 직접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공론장 형성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고,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도움을 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론장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환기되고, 그 공론장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도 공유될 수 있다. 또한, 공론장이 형성되기 전 만들어지는 주민들의 유대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공론장에서 보다 양질의 논의가 오가도록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민들이 직접 공론장을 만드는 과정은 공론장의 시작은 물론 운영에 있어서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윌스트리트 점령운동, 아랍의 봄은 소셜 미디어 혁명이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소셜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논의는 한 가지의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효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견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입장을 두 가지 방향으로 분류해보자면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태도, 행동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입장과 소셜 미디어의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입장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태도, 행동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입장에서는 위에서 제시된 주장과 같이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등이 소셜 미디어로 인해 발생한 사회변화라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가 전하는 메시지가 사람들의 태도 변화를 일으켰으며, 결국엔 거대한 사회변혁 운이라는 행동적인 결과까지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소셜 미디어가 속한 맥락을 무시한 채 소셜 미디어에만 집중한 다소 과장된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가 사회 변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그러한 변화가 소셜 미디어의 영향’만으로’ 야기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아랍의 봄’ 사례만 보더라도 소셜 미디어만이 사건의 원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남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는 엘리트 계층만이 인터넷을 이용하며,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소수의 엘리트 계층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인터넷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엘리트들보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또한 어려운 하층민들이 아랍의 봄에 더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 하층민들이 아랍의 봄이라는 사건에서 중심 축이 된 점은 아랍의 봄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게 만드는 데에 소셜 미디어만이 기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하층민들은 소셜 미디어가 아닌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세계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월스트리트 점령사건’도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만이 사회 변화의 절대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운동의 흐름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사실이지만, 정교하게 조직된 논의가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의 특징 중 한 가지가 약한 연결이며, 그 약한 연결이 정보가 급속도로 전파되는 데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신뢰관계를 통해 유대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된 의견 또한 필요한 것이다.
한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전파되는 정보의 신뢰성 문제도 등한시할 수 없다. 소셜 미디어는 모바일 기술과 함께 성장하면서 정보의 즉각성과, 전달의 신속성에 날개를 달았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만들고, 전달받은 정보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보의 전달은 사람들에게 풍부한 정보를 전해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현실에 대한 오지각을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불분명한 정보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삽시간에 퍼지거나, 잘못된 현실인식을 일으켜 침묵의 나선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러한 부작용의 예이다. 이러한 유언비어의 확산이나 침묵의 나선효과는 소셜 미디어 이용자들이 현실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의 왜곡은 고의로 악용될 위험이 있음은 물론, 다시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으므로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전달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셜 미디어는 이용자가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다는 구조 때문에 소셜 미디어 자체의 개방성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관계망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은 진보 정치인의 트윗, 진보 논객의 소식만을 받아보고,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의 경우에는 보수적인 이용자들과만 교류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의견을 파편화되게 만들어 그들만의 세상을 창조하게 만든다. 즉, 사회의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이렇게 소셜 미디어는 객관적인 정보만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통하거나, 왜곡된 현실인식을 갖게 하는 부작용을 미칠 수도 있다. ‘아랍의 봄’이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전세계적으로 의의가 있는 사회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소셜 미디어기 바람직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반사회적인 정보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지고 현실에 대한 오지각을 불러 일으킬 위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서 이러한 정보들이 유통되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 이유 역시 소셜 미디어가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변화를 일으키는 단 하나의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만이 아닌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이 사람들의 행동을 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할 때에야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는 나름의 기능과 효과를 지니지만, 그 효과는 단독적으로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셜 미디어가 속해 있는 사회의 여러 요인들과 함께 상호작용함으로써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가지는 한계를 보완하거나, 소셜 미디어가 가지는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사회적 맥락 등이 뒷받침이 되어야 소셜 미디어가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셜 미디어만이 ‘아랍의 봄’과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같은 거대한 사회변혁 운동을 야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은 과장된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다른 사회적 요인들도 함께 고려하는 폭넓은 시각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는 미디어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공익광고가 있다. 집이라는 삶의 공간이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부를 증식하기 위해 투자(혹은 투기)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세태를 꼬집는 의미일 것이다. 공익광고가 지적하는 바와 유사하게,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인 도시도 집과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도시는 경제적인 잣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정부의 지원금을 더 많이 받아오기 위해, 혹은 더 많은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개발이 계속 됐다. 이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은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이었는데도 결정권은 그들에게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도시는 ‘사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는 것’, 즉 경제적인 상품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러한 변화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변화했다.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공간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넓은 집을 갖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넓은 관계를 다져가는 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결과 도시는 사람은 살지만 사람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부재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도시는 미디어다>는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면서 도시가 사람 사는 곳으로 다시금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행정관료의 일방적인 일 처리가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마을을 만들어나간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도시에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높은 담장을 허물고, 담장을 허물어서 드러난 마당을 주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일은 이와 같은 맥락에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담장을 허무는 일은 폐쇄되어 있던 공간을 이웃에게 공개하는 것과 같다. 높은 담장에 가려져 있던 그 집 주인의 이야기가 공개되는 것이다. 이웃들을 위해 개방된 마당에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이야기가 생겨난다. 그 이야기는 다시 퍼져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그렇게 사람들이 조금씩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시작하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되면 지역의 스토리텔링이 생겨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나타나게 되는 곳이 바로 도시이다. 사람들의 삶은 공간인 도시가 이야기의 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도시는 미디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도시는 미디어라는 말은 도시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다시 퍼져나가는 곳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소식이 미디어로 모여들고, 그렇게 모인 소식이 다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도시가 미디어라는 말은 도시가 단순히 경제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어떠한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이라는 뜻이다.
한편, 이러한 도시의 역할을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이론을 토대로 설명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이론에 따르면 지역 내에는 로컬 미디어, 커뮤니티 조직, 거주자라는 커뮤니티 스토리텔러가 존재한다. 세 그룹의 스토리텔러들이 지역 내에서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 그 지역은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가 잘 갖춰진 지역으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이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세 스토리텔러가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이 서로 상호작용해서 지역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낼 때 튼튼한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가 만들어지게 되고, 구성원들의 집합적 효능감이 상승하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이론에 따라 도시를 살펴보면 도시는 세 스토리텔러가 존재하는 큰 공간이기도 하지만, 지역 미디어라는 커뮤니티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지역의 스토리텔러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으고, 그 이야기를 다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도시는 사전적인 개념으로서의 ‘도시’가 아닌,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실제적인 생활공간으로서의 ‘도시’라고 보면 된다. 만약 도시가 그저 사전적 의미의 도시에만 머물러 있다면 도시는 지역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지역의 커뮤니케이션 하부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없다. 그러나 도시가 새로운 움직임을 타고 ‘생활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면 도시는 다른 스토리텔러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미디어가 되는 것이다.
‘도시는 미디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앞에서 분석한 것처럼 도시가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이는 이야기의 장인 미디어도 될 수 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그러한 가능성을 함축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대상으로서의 도시가 아닌, 사람들과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삶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도시는 미디어’라는 말은 최근 주목 받는 있는 지역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대한 한 마디의 선언과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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