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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사막 - 게임 스토리4, 발렌시아 스토리

검은사막 게임 스토리4 - 발렌시아 스토리


발렌시아, 네세르 왕족


깨어있는 자가 나타나 한 청년을 고대 석실로 이끌어, 닫혀있던 문이 열리자 모두가 무릎 꿇고 석실로 향하는 계단을 놓아, 금은보화가 가득한 그 방에 다다랐을 떄, 청년은 가장 먼저 금빛의 왕관을 집어 드니, 발렌시아의 첫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재앙을 몰고 온 발렌시아의 1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의 통치가 끝난지 50년, 발렌시아 사람들은 당시 모든 기억을 잊고 살고 있다. 대사막을 덮친 검은 죽음도,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건으로 남은 아크만 대학살도 말이다.


엘리언력 233년, 아크만 부족과 네세르 왕족 간의 갈등은 예견된 일 중 하나였다. 발렌시아 건국 이전부터 조냊해 온 아크만 부족한 스스로를 '고대 문명의 수호자'라 칭하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발렌시아 사막에 놓은 석실, 고대 유물 등을 놓고 왕족과 마찰을 일으켜왔고, 14대 국왕 이무르 네세르는 아크만 부족을 규합하는 것이 유일한 과제라 여겼다.


엘리언력 234년, 이무르 왕의 인내심이 좋지 못하다는 정평은 사실이었다. 아크만 부족에게 몇 차례 보내진 회유가 모두 거절되자 왕은 화를 이기지 못했다. 결국, 왕의 군대가 아크만의 영역으로 보내졌을 때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널브러진 부족의 시체 위에서도 아크만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크만이 모습을 감추자 곧 참담한 재앙이 서대륙을 뒤덮기 시작했다. 발렌시아 상단으로부터 시작된 검은 죽음, 살덩이가 검게 썩어들어가는 참혹한 광경 앞에 이무르 왕도 사랑하는 왕비를 잃어야 했다. 사람들은 아크만 종족을 학살한 이무르 왕이 신의 분노를 산 것이라 수군거렸다. 이국에서느 그를 악마로 지목했다. 발렌시아가 검은 돌을 이용해 재앙을 초래한 것이라 몰아세운 것이다. 칼페온의 엘리언교 사제들은 재앙을 막기 위해 검은 돌이 묻힌 사막을 차지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엘리언력 236년, 자신만만하던 칼페온의 원정대가 간신히 넘은 사막 위엔 예측이라도 한 듯 무장한 발렌시아군이 서 있었다. 오직 국왕을 위해 존재하는 발렌시아군의 아성은 이제 막 집결된 연합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칼페온의 왕 가이 세릭의 고집으로 전쟁은 삼십 년간 이어졌지만, 그 끝은 실로 허무했다고 말한다. 사막 위에 뒤엉킨 칼페온 연합군과 발렌시아군을 집어삼킨 거대한 모래 폭푸으 발렌시아에서도 전례가 없던 일이다. 칼페온은 수만의 원정대를 잃었고, 더는 사막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그렇듯 전쟁은 자연의 섭리로 끝이 났다. 이내 모래 위에 뿌려졌던 핏자국도, 전쟁의 잔인함도 모두 사막이 거두어 간 듯 잠잠해졌다. 이무르 왕은 희생된 군사를 기리기 위해 전쟁이 일었던 곳을 붉은 사막이라 칭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알신에게 감사드렸다. 그리고 왕이 남긴 말은 곧 발렌시아의 지침이 되었다. "사막은 아알의 영역이오, 오아시스는 아알의 청량함이오, 검은 돌은 아알의 풍족함이라." 검은 죽음과 기나긴 전쟁, 그리고 소홀해진 내정 탓에 잇따른 작은 반란도 흔한 일이 되었다. 지친 왕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때쯤, 발렌시아 왕국의 상징, 황금 열쇠를 물려받으며 왕위를 이은 것은 15대 토르메 네세르다. 발렌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에 왕위를 이어받은 토르메는 이미 세 아들과 하나의 딸을 두고 있었다.


엘리언력 270년, 토르메 네세르는 교양이 넘치는 왕이었다. 그의 통치 아래 발렌시아는 점성술, 천문학, 신학 등이 크게 발달했고, 대사막에 넘치는 흑결정 자원으로 부를 쌓아갔다. 그렇게 발렌시아는 살기 좋은, 거대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국으로 부상했다. 국민은 과거의 역사는 뒤로 한 채, 유일신 아알의 뜻에 따라 더 행복한 삶을 찾으며 살기 시작했다.

엘리언력 282년, 지병을 앓던 토르메가 서거한 뒤, 그의 첫째 아들인 사하자드 네세르가 16대 왕위에 올라섰다. 토르메의 유언에 따라 그와 이국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왕자 바르한은 군부를, 셋째 왕자 만메한이 법전을, 그리고 막내 공주 사야가 아알의 경전을 관리하도록 했다. 발렌시아 국민은 안심했고 그런 왕국이 자랑스러웠다.


엘리언력 285년, 평화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둘째 왕자 바르한이 그의 어머니를 통해 사하자드 왕에게 황금 열쇠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천 년의 역사 동안 전해져 온 황금 열쇠는 발렌시아 1대 국왕이 탄생한 장소로 향하는 매개체였다. 대대로 발렌시아 국왕만이 지닐 수 있는, 왕이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즉 그것이 없다면 왕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멸족했다고 여기던 아크만 무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사막을 떠도는 고대 거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진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여겼다. 발렌시아 건국 전설에 얽힌 비밀을 품은 황금 열쇠, 그것은 되려 발렌시아 왕국의 균열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